어느 날 갑자기, 서울의 거리가 마치 영국의 축구 경기장처럼 변했습니다. 뉴진스가 무대에서 입고 나온 헐렁한 축구 유니폼, 블랙핑크 제니가 믹스매치한 스포티 룩은 이제 홍대나 성수동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 현상에는 블록코어(Blokecore)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영국의 평범한 남자를 뜻하는 속어 ‘블록(Bloke)’과 평범한 멋을 추구하는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인 이 트렌드. 과연 이것은 스쳐 지나가는 유행일까요? 아니면 그 이면에 더 깊은 무언가가 숨어 있는 걸까요? 단순한 축구 유니폼 한 장이 어떻게 Z세대의 정체성과 문화를 대변하는 도구가 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5가지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목차
1. 정체성의 도구: 블록켓(Blokette)의 탄생과 진화
초기의 블록코어가 단순히 남성들의 축구 유니폼 패션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여성들을 만나 블록켓(Blokette)으로 진화했습니다. 남성적인 단어인 ‘블록(Bloke)’과 지극히 여성스러운 ‘코켓(Coquette)’을 합친 이 신조어는 현재 가장 핫한 패션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블록켓의 핵심은 이질적인 것의 조화입니다. 땀 냄새가 날 것 같은 투박한 오버사이즈 축구 유니폼에 하늘하늘한 레이스 스커트나 리본, 니삭스를 매치하는 식입니다. 이 기묘한 조합은 Z세대가 자신의 모순을 포용하는 방식입니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그들만의 언어인 셈입니다.
2. 시작은 유명 디자이너가 아닌 한 틱톡커의 농담이었다
이 거대한 패션 트렌드가 샤넬이나 구찌의 런웨이가 아닌, 한 틱톡커의 가벼운 농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는 현대 패션의 권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021년, 미국의 틱톡커 브랜든 헌틀리(Brandon Huntley)는 영국 축구 팬들이 녀석(Bloke)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장난스럽게 따라 하며 영상을 올렸습니다. 청바지에 축구 유니폼을 입은 그의 영상은 단순한 유머였지만, 순식간에 온라인을 강타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열광했고, 해시태그 #Blokecore가 생성되며 전 세계 패션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3. 영국 문화를 세계로 쏘아 올린 K팝의 힘
블록코어의 뿌리는 1970~90년대 영국의 테라스 컬처(경기장 스탠딩석 응원 문화)와 오아시스(Oasis) 같은 브릿팝 밴드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서구권을 넘어 전 세계적인 붐이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K팝, 특히 뉴진스(NewJeans)와 블랙핑크였습니다.
데뷔곡 ‘Attention’부터 뉴진스는 빈티지 스포츠 저지를 명품 브랜드와 믹스매치하여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존 아이돌의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의상 대신, 철저하게 계산된 자연스러움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뉴진스 효과’로 한국의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는 유니폼 거래액이 전년 대비 5.4배나 폭증하기도 했습니다. K팝 아티스트들은 영국의 하위문화를 재해석하여 글로벌 트렌드로 역수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4. 아디다스 삼바의 비밀스러운 과거와 현재
블록코어 룩의 마침표는 단연 아디다스 삼바(Adidas Samba)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가장 힙한 패션 아이템이지만, 그 기원은 놀라울 정도로 거칠고 실용적이었습니다.
- 1949년: 얼어붙은 땅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개발된 기능성 축구화로 탄생했습니다.
-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을 기념해 삼바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 1980년: 영국 리버풀 훌리건들이 즐겨 신으며 그들의 피아식별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능과 투쟁, 그리고 하위문화의 거친 역사를 가진 신발이 오늘날 가장 세련된 패션 아이템이 되어, 원피스나 슬랙스 아래 신겨진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역사를 알면 패션이 더 재미있어지는 이유입니다.
5. 성공 강박에 대한 조용한 반항, 그 의미
마지막으로,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블록코어 스타일에는 현대 사회의 허슬 컬처(Hustle Culture, 성공 지상주의)에 대한 반항이 담겨 있습니다.
항상 성공을 위해 각 잡힌 정장을 입고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 대신, 편안한 옷을 입고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축구를 보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 태도. “친절한 것도, 이상한 것도 모두 멋진 일이다”라고 말하는 Z세대의 철학이 헐렁한 저지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꽉 조이는 옷 대신 넉넉한 유니폼을 입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자유를 향한 작은 외침일지도 모릅니다.
6. 실전 스타일링 팁: 어떻게 입어야 할까?
이 트렌드를 일상에서 즐기고 싶다면 다음 3가지만 기억하세요.
- 믹스 앤 매치: 유니폼을 입었다면 하의는 청바지 대신 슬랙스나 롱 스커트를 입어보세요. 의외의 조합이 세련됨을 만듭니다.
- 사이즈 업: 딱 맞는 사이즈보다는 한두 치수 크게 입어 헐렁한 실루엣을 연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액세서리 활용: 진주 목걸이나 헤드폰 같은 액세서리를 더해 스포티함과 키치함을 섞어보세요.
마무리 및 Next Step
결국 블록코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연한 정체성을 찾으려는 탐구, 소셜 미디어의 예측 불가능한 힘, 그리고 더 균형 잡힌 삶을 원하는 현대인의 열망이 만들어낸 문화적 거울입니다.
오늘 당신이 무심코 집어 든 저지 한 장, 어쩌면 그 옷은 당신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말, 옷장 속에 잠자고 있던 유니폼을 꺼내 새로운 스타일링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블록코어 뜻과 유행 이유, 단순한 유행일까, Z세대의 새로운 언어일까?”에 대한 2개의 생각